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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암 3기 완치판정 후 다시 암 투병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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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수잔 2021. 4. 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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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암 3기 완치판정 후 새로운 암 세포발견과 전이

 

새로운 조직의 변화

안녕하세요. 이전에 다뤘던 직장암3기에 대한 포스팅에 이어 완치판정 후 변화와 또 새로운 암 세포 발견에 대한 내용으로 오늘 포스팅을 준비해보았습니다. 새롭게 재발한 암을 어떻게 투병해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치료과정에 놓여있는지 그리고 장루에 관하여 궁금하신 분들이 있다면 아래의 내용을 참고해주세요.

 

1. 새로운 암세포 발견

엄마는 직장암3기 완치판정 후 매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셨습니다. 한번 걸렸던 암은 다시 재발하기가 쉽기 때문에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검진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러나 완치판정 후 7년뒤 암의 재발이 아닌 변이조직으로 새로운 암세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것도 항문가까운 쪽으로 새로운 암세포가 발견되었고, 꼬리뼈쪽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새롭게 옮긴 병원에서 엄마의 치료과정을 두고 엄마의 주치의 교수님께서 많은 고민을 하셨습니다. 이미 엄마의 직장은 많이 잘라낸 상태였고, 꼬리뼈쪽은 수술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암세포가 자란 부위는 수술로 간단하게 떼어낼 수 있는 부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한다면 암세포를 많이 떼어낼 수 있겠지만 항문쪽과 꼬리뼈쪽이어서 수술을 해도 암세포를 100프로 떼어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수술 후 앉는것도 걷는것도 어려울 수 있어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선택이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엄마와 교수님과 치료과정 상담 후 결국 수술은 포기하고 방사선으로 엄마의 암세포를 최대한 줄여놓고 항암을 하기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방사선치료와 항암약이 최대한 잘 들기를 기도할 뿐이었죠.

2021.04.11 - [분류 전체보기] - 직장암 3기부터 뼈 전이까지

2. 염증과의 싸움

방사선치료와 항암약에대한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시작했고, 생각보다 약은 엄마에게 잘 들어서 암세포가 많이 작아지지는 않았지만 조금 퍼져있던 암세포가 한 곳으로 모이는 정도로 효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암투병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암세포는 없어지면 정말 좋겠지만 더이상 커지지 않고 다른곳으로 퍼지지 않으면 존재하는 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싸워야 할 문제들은 암세포도 있지만 그 외에 일어나는 수많은 다른 증상들입니다. 항암을 시작하자 엄마의 엉덩이쪽으로 염증이 생겨서 농이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염증이 있는 곳에서는 열도 나고 부풀어오르면서 엄마를 괴롭히고 아프게해서 엄마는 통증과의 싸움으로 힘들어하셨습니다.

 

항생재로 염증을 잡고 항암을 하려고 해도 염증에는 별로 효과가 없자 엉덩이에 구멍을 내어 고름들이 빠져나오게끔 관을 달아놓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플까요? 처음에 그렇게 관을 꽂고 농들이 빠져나오게끔 해놓았을 때 엄마는 너무 아파서 울기도 하셨습니다. 매일 진통제를 달고 살아도 아픔이 줄어들지 않아서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렇게 염증과의 싸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때만큼 통증은 아니지만 계속 고름이 찼다가 빠졌다가 하고 있습니다. 엉덩이에 구멍도 여전히 농이 나올 수 있도록 해놓았구요. 엄마가 그래도 많이 호전된 것은 아빠의 정성스러운 소독입니다. 매일 저녁 엄마의 시술부위에 소독과 이리게이션을 해주십니다.

 

엄마가 염증이 심한날은 이리게이션을 너무 고통스러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리게이션을 하면서 안에 있는 농들이 많이 빠져나와서 염증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중요한 숙제인것 같습니다.

 

3. 마약성 진통제

엄마가 주로 복용하는 진통제는 2가지 입니다. 4시간마다 복용하는 아이알코드와 8시간마다 복용하는 타진이 있습니다. 두가지 다 마약성 진통제로 엄마가 한참 통증이 심하실 때는 두가지 다 복용하셨습니다. 지금은 타진은 복용하지 않고 아이알코드만 4시간에 한번씩 드시고 계십니다.

 

4. 면역력과의 싸움

엄마의 암투병 중 가장 고비일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엄마는 암투병중이고 항암으로 면역력이 많이 약해져서 조금만 병균이 있어도, 조금만 음식을 잘못먹어도 위급해집니다.

 

항암이 끝난 주에 집에 오셨는데 그때 장 마비가 왔고, 엉덩이의 염증도 심해지면서 엄마는 감염병실에 계시면서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렇게 장 마비나 염증이 심해지면 엄마는 균 검사를 받게되어 2주정도 격리되어 병균이 음성이 나올때까지 5인실 병실에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2주정도 엄마는 일반식은 전혀 못드시고 영양수액과 항생제를 맞으며 지내셨고 온몸이 퉁퉁붓고 통증으로 고통에 시달리며 지내셨습니다. 그때 통증뿐만 아니라 실제로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장 마비가 해결이 안되면 저희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강도가 높은 약들을 맞기도 하고 물도 못마시는 상황이 와서 매일 생수로 가글을 하고 병실에서 화장실에 갈 때 마다 옴몸에 달고있는 링겔들로 엄마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그 불편한 상황들도 잘 이겨내주고 가족들도 함께 기도하고 도우면서 엄마는 조금씩 나아졌고 고비는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힘들지만..

 

5. 장루의 시작

엄마의 엉덩이랑 항문쪽 그리고 꼬리뼈쪽 통증이 심해지면서 변을 보기 어려웠고, 또한 엉덩이의 염증이 있어서 이물질이 끼면 안되는데 항문으로 자꾸 변을 보게되어 염증부위를 건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염증에 차도가 별로 안생겼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주치의 교수님은 임시장루를 만들기 시작했고 엄마는 장루로 변을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임시장루여서 소장쪽에 구멍을 내어 장루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엄마도 우리가족도 처음이라 너무 조심스럽고 엄마의 장루를 갈아줄때도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장루는 아주 잘 붙여놔도 새기도 하고 몇일에 한번씩 갈아주어야 해서 그때마다 가족들이 모여서 병원에서 알려준 동영상들이랑 인터넷에 나와있는 장루만드는 법 영상들을 보며 공부했습니다.

 

장루는 붙이는 순서와 만드는 순서에 따라 잘 새기도 하고 잘 안새기도 하지만 장이 배속으로 쏙 함몰해버리면 더 자주 샜던 것 같습니다. 한참 소장이 뱃속으로 함몰되어있을 때는 거의 매일 갈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주무실 때 말고는 장루복대도 자주 하고계셨습니다.

 

장루에 대해서는 병원에 계시는 장루간호사분도 장루를 갈고 만드는 법은 아시지만 다른 노하우는 모르십니다. 장루는 해본사람만이 노하우가 있고 방법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아빠가 엄마를 돕기위해 장루협회라는 카페에 가입하셔서 장루협회장님께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기도 했고, 거기서 나눔하는 장루용품들을 받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알려주신 노하우로 해보니 이전보다 덜 새고 좋았고, 이제는 엄마가 장루에 익숙해지셔서 우리의 도움이 없이도 혼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링연고가 정말로 어려웠는데 찰흙처럼 만질 수 있는 링연고가 나와서 장루를 미리 만들어놓기에도 정말 편리하고 짜서 쓰는 링연고로 만들때보다 잘 안새서 좋았습니다.

 

6. 소변줄의 시작

엄마가 염증치료와 항암치료를 진행하면서 또 힘들게 하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소변입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에는 소변약을 받아서 먹고 소변을 보고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소변이 방광에 꽉 차있게되어 복통을 호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새로운 암 조직을 발견 후 2년째 되었을 때 엄마는 등쪽에 신장과 바로 연결되도록 작은 구멍을 내어 두개의 소변줄을 연결하게 되었습니다. 소변줄을 각각 다리에 하나씩 묶고다녀야 하고, 신장에서 바로 나와서 소변이 꽉 차게 되면 비워주어야 해서 불편함은 있었지만 다른 기능들이 조금씩 좋아짐을 느껴서 엄마는 씩씩하게 잘 이겨냈습니다.

 

소변을 비울 때 마다 얼마나 소변을 비웠는지 적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한번씩 병원에 가서 관을 갈아주어야 막히지 않고 소변이 잘 나오게 되기때문에 여러모로 번거로울 것 같은데 항상 긍정적인 엄마는 잘 이겨내고 성실하게 갈아주었습니다.

 

7. 암은 결국 마라톤이다.

엄마는 다시 암투병을 시작한지 올해로 벌써 3년째입니다. 새로운 암세포를 발견하고 뼈까지 전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는 앞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아서 뒤에서 울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마음이 항상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엄마의 컨디션은 매일 다른데 어떤날은 괜찮은 날도 있고 어떤날은 정말 아파할때도 있습니다. 통증이 심한날엔 새벽에 갑작스럽게 응급실에 갈때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항상 아팠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더욱 슬펐습니다.

 

하지만 암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고 더이상 암세포가 커지지 않는 다면 이대로 오래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암을 대해야할까요?

 

바로 마라톤입니다. 긴 달리기와의 싸움인 것이죠. 엄마가 통증으로 힘들어하실때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그리고 엄마의 몸에 장루도 달고 소변줄도 달고계셔서 함께 외출도 어렵고 도와드릴일이 많지만 그래도 매일 이렇게 엄마의 얼굴을 보며 지내는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엄마의 암투병과정에서 크게 깨달은 것은 시간의 소중함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몇일일지 몇주일지 몇개월일지 몇년일지 모르지만 흘러가는 우리의 시간이 아깝지 않게 매일 행복하고 매일 웃고 매일 맛있는 것을 먹으며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 입니다.

 

물론 쉬운일은 아닙니다. 엄마가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우리도 매일 일하고 힘든 생활을 하기에 여전히 다투기도 하고 또 가족들끼리 서로 서운함도 생기기도 했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지금의 순간을 후회할지 아님 괜찮을지 고민해본다면 항상 답이 나왔기 때문에 대화로 잘 풀어나가고 잘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도 예전보다 조금 제약이 생긴것도 있습니다. 엄마가 집에 혼자계신다면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길 때에 도와줄 수 없어서 최대한 가족들과 스케줄을 맞춰서 집에 엄마가 혼자계시지 않게끔 계획을 갖고 친구들과 만나기도 하고 저의 생활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생활들이 이젠 익숙해지고 주변 사람들도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주어서 우리는 엄마의 통증과 투병에 함께 싸워 이겨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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